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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연민이죠.”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는 한 마디로 작품을 표현해달라는 말에 그렇게 답했다. 아사이 료의 소설 ‘누구’ 역시, 나에게 누군가 이 소설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연민이라고 답할 것이다.

소설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취업 스터디 모임을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평가 당해야 하는 이들이 모인 모임. 그들은 그 안에서 서로 응원하고, 의지하고, 또 한편으로는 견제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에 있는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그리고 있었다.

작품 중간중간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트위터에 남긴 글은 마치 그들 스스로를 상징하는 동판 얼굴조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외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동판의 튀어나온 부분이라면, 그 반대쪽에 숨겨져 있는 일그러지고 움푹 패인 부분 역시 부장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일그러진 모습을 나는 쉽게 탓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노력을 폄하하고, 그들의 발버둥에서 추한 모습을 골라내어 지적하고, 그들이 받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 그건 반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평가 당해야 하는 취업이라는 특수한 상황, 경쟁자와 함께 준비를 해야하고, 여러모로 나보다 나아보이는 누군가와 비교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그런 어두운 모습을 들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벌어진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다쿠토의 비밀 트위터 계정 ‘누구’를 사실은 리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난 다쿠토가 합격하지 못하는 이유, 알아.”로 시작하는 소설의 최후반부, 리카가 격정적으로 쏟아내는 말에서 내가 느낀 건 역설적이게도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었다.

작품 내내 주인공 다쿠토에게서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리카. 그녀는 자신이 취업 활동을 위해 아직 입사하지도 않은 선배들을 만나러 다니고, 대학생 때의 활동 내역이 적힌 명함을 뿌리고 다닌다. 그녀는 그런 활동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을 점점 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최선이며, 그렇게라도 해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거라며, 마치 관찰자처럼 평가만 하고 있는 너는 무엇을 시도하고 있느냐고 다쿠토에게 묻는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찾아가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주인공 다쿠토는 중간중간, 그런 리카의 말을 부정한다. “그렇지 않아.“ 그런 다쿠토의 말은 단순한 자기부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리카가 단순히 알맹이는 없이 누군가에게 드러나는 모습만을 신경쓰는 평면적인 존재가 아닌 것처럼, 다쿠토 역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기고 남들을 비웃는 그런 평면적인 존재가 이미 아니었다. 다카요시와 긴지는 다른 사람이라며 그 둘을 동일시 하지 말라는 사와 선배의 말을 곱씹으며, 다쿠토 역시 악플을 견디면서도 매달 공연을 하면서 현실에 부딪히고 있는 긴지와 말만 번지르하게 할 뿐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다카요시와의 간극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간극은 곧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며 현실에 뛰어들지 않는 자신과의 간극이기도 했다. 단지 다쿠토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아직은 두려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쿠토가 힘겹게 내뱉은 “그렇지 않아” 라는 말은, 그래서 리카가 격정적으로 쏟아내는 말에 대한 부정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 도망치면? 볼썽사나운 자신과 거리를 둔 곳에서 언제까지 관찰자로 있으면? 언제까지고 그 가련한 계정 이름대로 ‘누구’가 된 척이라도 해서 누군가를 비웃고 있어봐. 취업활동 3년째, 4년째가 돼도 계속.”

가시돋힌 말을 쏟아낸 리카는 이렇게 말한다.

리카는 몹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리카는 이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도 트위터로 내 노력을 실황중계하지 않으면 서 있을 수가 없어.”

작가는 응원한다. 고민도 있고, 욕심도 있고, 이기적이고… 하지만 짝사랑하는 누군가 앞에서는 설렘도 간직한 그 젊은이들을, 작가와 같은 나이또래의 친구들을 말이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설가들은 등장 인물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그들의 인간적인 고민, 짊어져야 했을 인생의 무게 같은 것들을 소설에서는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로 우리,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이 소설을 나는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상실의 시대보다, 나는 이 소설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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