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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저자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그들의 사랑을 그렸고,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렸고, 그래서 가장 비극적으로 읽히도록 만들었다. 이 소설의 표현처럼, 그들이 사랑했기 때문에 벨루타는 죽어야 했다.

이 소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 속의 시간은 마구잡이로 변했고, 인도식 이름과 명칭은 익숙치 않았으며, 풍경을 묘사한 비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카스트 제도와 관련된 명칭을 이해하기 위해 검색을 해가며 이 소설을 읽어야 했다. 몰입하기 힘든 소설, 하지만 그 덕분에 차코, 아무, 에스타와 라헬, 벨루타, 막내 코차마의 캐릭터는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저자의 실제 고향이라는 아예메넴의 냄새 역시 더욱 끈적하게 다가왔다.

저자가 인도의 사회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과장하거나 새롭게 그려내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법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카스트 제도, 이해관계에 얽힌 공산주의, 서로에 대한 불만을 가진 채 묘한 긴장감 속에 유지되는 대가족, 그리고 분명히 실재하지만 실재해서는 안되는 존재, 불가촉천민.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마지막 순간, 미래가 아닌 단지 내일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던 벨루타와 아무에게 기어코 찾아오고야 만 그 현재, 그 비극의 여운은 분명 짧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더욱 무겁게 짓누른 것은 저자는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렸을 뿐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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