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중에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시, 윤동주의 ‘서시’ 마지막 연이다. 스치우는 바람을 맞으며 밤 길을 걷던 윤동주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무심한 듯이 그렇게 떠 있었을 저 별. 나라를 빼앗긴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윤동주는 그렇게 독백했다.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즈음이었다. 사춘기였기 때문인지, 소설, 시, 그 외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모두 살아있는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단편 소설 중에는 김동인의 ‘붉은 산’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장 마지막, 삵이 애국가를 부르는 부분은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함께 실려있던 작품해설을 보며,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감정의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보며 화가 났던 기억 또한 선명하다. 장편 소설은 김정현의 ‘아버지’가 특히 감동적이었다. 수업도 듣지 않고 쉬는 시간에 일어나지도 않고, 그 긴 소설을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려갔었다. 옆에 친구들이 볼까봐 두 눈 가득 맺힌 눈물을 몰래 훔쳐가면서 말이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갈매기의 꿈’ 역시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끝까지 읽었다. 아름다웠다. 환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시였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는 언어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다. 그 시작이 바로 이 서시였다. 어머니와 함께 시가 너무 좋다며 어떻게 그런 표현들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장에 꽂혀 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꺼내었다. 그 가장 앞에 있던 시,  밤 하늘에 무심히 떠 있는 별처럼 그렇게 무심한 듯이 말하는, 하지만 윤동주의 모든 마음이 느껴지던 그 마지막 문장,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도 시에 대한 수업을 하실 때면 그 시인의 삶과 시대상황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해 주셨다. 천상병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기억도 난다. 간첩 누명을 써 온갖 고문을 받은 천상병 시인이, 그래서 그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하게 되는 그가 남긴 것이 바로 이 시, 귀천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고문을 받고 그 이후로 몸과 정신이 모두 성치 못한 채로 살아야 했던 그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며 하는 말,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를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온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눈물이 울컥 할 정도로 전율했던 시가 있다. 정부 최고의 정보 기관이 대선에 개입하고, 경찰청장은 그 수사의 축소 은폐를 시도하며, 여당은 이를 무마하려 전직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토를 북한에게 상납하려 했다 주장하고, 그로 인해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대통령기록물의 사본이 열람되고, 그렇게 열람한 사본은 위조된 것이었으며, 그 위조된 사본 어디에도 영토 포기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고, 그래서 다시 열람하기로 한 원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흘째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 미쳐가는 시대에, 문득 떠오른 시.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내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 오는 삶의 아픔
살아 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 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