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참담하다. 이 나라가 내 나라라는 것이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린 학생들이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데, 좌파가 교과서를 만들어서 우리 나라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했었다. 바로 그 좌파가 만든 교과서로 교육을 받은 난데, 지금까지 우리 나라 역사를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이 나라가 자랑스러웠다.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도, 이승만이 도망치며 한강대교를 폭파한 것도,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만들어 군부독재를 한 것도, 그런 아픈 역사라 할지라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존심을 가진 나라라서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또다시 절망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에 놓여있다. 지금의 이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떤 충격적인 사실들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될지 두렵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윤동주 선배님은 조국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했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찾은 대한민국이다. 이한열 선배님은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촛불이 되었다. 바로 그 87년 체제 아래에 우리는 지금껏 살아왔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절망스럽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어갈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이 나라를 변화시킬 힘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그게 앞선 시대를 살았던 선배들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