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호세를 되돌아보며

산 호세. IT, 특히 컴퓨터 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곳은 꿈의 도시나 다름 없다. 애플과 구글을 포함한 수많은 일류 IT 기업이 만들어진 곳이고,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수많은 기업들의 본사 혹은 연구소가 위치해 있는 실리콘벨리가 있는 곳이다. 컴퓨터 과학 분야 최고의 대학인 스탠포드 대학이 바로 그 옆에 위치해 있고, 스탠포드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UC버클리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간 학회는 IEEE Symposium on Security and Privacy (SP), 세계 최고의 보안 관련 학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게도 날씨가 좋던 5월 말, 내가 찾았던 샌프란시스코와 산 호세에 대한 기억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게 남아있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프로젝트 마감은 다가오고, 아직 할 일은 태산같이 많은 상황에서 여행을 떠났던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미국에 가 있는 동안은 다 잊자,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단순히 미국에 간다고 해결될 리 없었다.

미국에 가서도 마냥 편히 푹 쉴 수 없었다. 눈 앞에서 세계 일류 수준의 보안 연구를 이끌어가는 연구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까. 더 열심히 해야지, 잘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모티베이션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조급해지고 당장 내 앞에 쌓여있는 일들이 부담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 곳에서 만났던 연구실 선배님들이자 많이 닮고 배우고 싶은 교수님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으면서도 이미 이 학회에 발표자로 참여한 한국의 연구자들,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이 싫었다. 참 못나게도 그 속상함이 함께 미국에 갔던 일행, 후배이자 같은 팀원들에게 향한 것 같다.

6개월이 넘게 지난 지금, 그 때의 산 호세는 많이 지쳐있던 기억, 속상했던 기억, 어떻게라도 잘해보고 싶어 발버둥치던 기억,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잘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또 정말 열심히 했었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았던, 그런 착잡한 기억으로 말이다.

어찌 모든 기억이 아름답기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시간이 흘렀고, 그 때의 그 프로젝트는 좋든 나쁘든 어쨌든 끝이 났으며, 그 때의 팀원들과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중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후배도 있다. 많이 지쳤던 나도 어느새 다시 무언가를 신나게 하고 있다.

이 정도면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