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6.

4개월 전, 여행을 떠나던 그 때는 정신없이 바쁘고, 또 많이 힘들 때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고 있었고 또 아무렇지 않게 살고 싶었지만, 정말 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를 않던 때였다. 그래서 마치 도피하는 것처럼 미국으로 떠났다. 이 여행기의 제일 처음에 적었듯이, 나는 정말 미국에 가서 잠이나 푹 자다 오고 싶었다. 그렇다고 변할 것도, 나아질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크게 변한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안서 작업은 그나마 나에게 생기를 더해주는 작업이었지만, 그 작업이 끝나자 또 한동안 멍하게 지내다가 훈련소를 갔다. 훈련소에서의 시간도 마치 미국 여행처럼 나에게는 다행히 좋은 휴식이 되어주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내 스스로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으니까. 훈련소를 다녀오니 12월이 되어 있었고,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이겨내야지. 이겨내고 싶었다. 이러고 있기 싫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오히려 부담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담만 된다는 것, 이래서는 해결이 안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치고, 지쳐버린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흐르고 있었다. 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탠포드에 갔던 것이다.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이 프리즈비를 던지며 뛰놀던 그 잔디밭과 주황색 지붕의 건물들, 선선하게 불던 바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휘감아, 무언가를 날려보내 주는 것 같던 그 따스하고 고마운 바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