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이 은퇴를 선언했다.
농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 '살아있는 전설'로써 그의 인생에 있어 클라이막스를 써 내려가고 있던 바로 그 때, 아이버슨은 데뷔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마이클 조던과, 이제 갓 데뷔한 루키 아이버슨의 운명적인 첫만남은 바로 아이솔레이션 상황이었다.
참고1.
아이솔레이션: 한 팀에 1 on 1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있을 경우,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주위로 빠지고 그 선수와 상대 매치업 선수 간의 1 on 1 상황을 만들어 주는 전술. 즉, 여기서는 아이버슨의 공격력을 믿고 팀은 그에게 1 on 1 공격을 시도하게 한다. 그런데 상대 감독-NBA 최고의 명장 중 하나인 필 잭슨-은 이를 알아채고 마이클 조던이 직접 아이버슨을 마크하도록 지시한다. 동영상의 소리를 듣다보면 필 잭슨이 "마이클!" 하고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솔레이션: 한 팀에 1 on 1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있을 경우,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주위로 빠지고 그 선수와 상대 매치업 선수 간의 1 on 1 상황을 만들어 주는 전술. 즉, 여기서는 아이버슨의 공격력을 믿고 팀은 그에게 1 on 1 공격을 시도하게 한다. 그런데 상대 감독-NBA 최고의 명장 중 하나인 필 잭슨-은 이를 알아채고 마이클 조던이 직접 아이버슨을 마크하도록 지시한다. 동영상의 소리를 듣다보면 필 잭슨이 "마이클!" 하고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2.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평을 듣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의 수비능력 때문이다. 전체 커리어 평균 득점이 30점을 넘길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선수였지만, 그는 동시에 상대팀의 에이스를 20점 아래로 꽁꽁 묶는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였다.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공격력을 가진 선수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만한 수비력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마이클 조던이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 그가, 앨런 아이버슨의 아이솔레이션을 수비하게 된 것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평을 듣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의 수비능력 때문이다. 전체 커리어 평균 득점이 30점을 넘길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선수였지만, 그는 동시에 상대팀의 에이스를 20점 아래로 꽁꽁 묶는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였다.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공격력을 가진 선수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만한 수비력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마이클 조던이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 그가, 앨런 아이버슨의 아이솔레이션을 수비하게 된 것이었다.
1997년, 그 유명한 아이버슨과 마이클 조던의 1 on 1 상황. 아이버슨을 직접 마크하는 마이클 조던과, 그런 마이클 조던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승부를 시작하는 앨런 아이버슨. 경기장의 팬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20초 부터 앨런 아이버슨과 마이클 조던의 승부가 나온다.
'마이클!'을 외치는 필 잭슨 감독의 목소리와 기립박수를 치는 팬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조던을 완벽하게 제치고 득점에 성공한다.
같은 장면. 이번에는 아이버슨의 공격을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왼쪽으로 가는 척 하면서 제자리로, 다시 한번 더 왼쪽으로 가는 척 하면서 오른쪽으로 돌파.
마이클 조던을 두 번이나, 완벽하게 무게 중심을 빼앗아버린 이 드리블이 바로,
앨런 아이버슨을 대표하는 기술, 크로스 오버 드리블Cross Over Dribble이다.
그리고 마무리 점프슛.
전성기를 구가하던 농구의 황제를 앞에 두고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그와의 1 on 1에서 완벽하게 그를 속이며 득점에 성공하는 루키의 모습에 관중들은 환호했고, 그렇게 그는 세상에 알려진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앨런 아이버슨. Allen Iverson, Philadelphia 76ers.
그가 데뷔를 했던 그 때는, 마이클 조던이 은퇴를 하던 바로 그 때였다.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시 맥그레디, 빈스 카터 등, 조던의 뒤를 잇길 원하는 수많은 '포스트 조던'이 나타났다. 조던을 보며 꿈을 키워온 그들에게도, 조던의 빈자리가 허전했던 팬들에게도, '포스트 조던'의 자리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리였다. 모두가 조던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모두가 조던의 뒤를 잇고싶어 할 때, 새파란 신인이었던 앨런 아이버슨은 이렇게 말한다.
"I don't wanna be Michael Jordan, I don't wanna be Magic, I don't wanna be Bird or Isiah. I don't wanna be any of these guys. You know, when my career's over, I'm gonna look in the mirror and say 'I did it my way'"."나는 마이클 조던이 되고싶지 않다. 매직도, 버드도 되고싶지 않다. 내 선수경력이 끝났을 때, 나는 뒤돌아보며, '나는 내 길을 걸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조차 없는 신성한 이름이었던 마이클 조던에 대해, NBA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신인이 '감히', '무례하게도' 자신은 포스트 조던이 아닌 앨런 아이버슨이 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언론은 그의 이기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열광하면서도 안팎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던 그에게 악동 이미지를 덧씌워버렸다. 홍명보가 2002 월드컵 4강을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하고 난 그 시점에서, 신인 축구선수 한 명이나와서는 '나는 홍명보의 뒤를 잇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가겠습니다.' 정도의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분위기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NBA에서, 그와 매치업이 되는 상대는 항상 2m에 육박하는 장신들이었고, 골밑을 지키는 센터는 220cm, 120kg을 훌쩍 뛰어넘는 거구들이었다. 183cm에 75kg 앨런 아이버슨은, 하지만 끊임없이 그들에게 부딪혔고, 수도없이 내팽개쳐지고, 튕겨나가고, 쳐박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림을 향해 슛을 올려놓았고, 쓰러지면서도 공을 놓치지 않았다. 안된다고, 불가능하다고 다들 포기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그 작은 몸으로 혼자서 상대팀에 달려들었다. 보고있는 사람이 눈물이 나려고 할 정도로 말이다.
부딪히고, 내팽개쳐지고, 튕겨나가고, 쳐박히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보는 이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보는 이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아이버슨의 플레이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씩 변화시켜 갔다. 경기에서 보여주는 그의 열정은 홈팬 뿐만 아니라 상대팀의 팬까지 감동시켰고, 언론 역시 그에게 점점 우호적으로 변해갔다. 아이버슨 역시, 모두가 그를 욕할 때조차 그를 감싸안아준 래리 브라운Larry Brown 감독 밑에서 조금씩 성숙해 갔다.
2001년 올스타전은 서부 팀이 동부 팀에 비해 훨씬 강한 전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실제로 그 당시 무적의 센터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현재까지도 최고의 스윙맨으로 활약하고 있는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 팀 던컨Tim Duncan , 캐빈 가넷Kevin Garnett, 크리스 웨버Chris Webber 등,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팀이었다. 앞에 손에 꼽은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209cm. 그에 대항하는 동부 팀의 주축은 레이 앨런Ray Allen, 빈스 카터Vince Carter, 제이슨 키드Jason Kidd, 그리고 앨런 아이버슨이었다. 그들의 평균 신장은 192cm. 최장신이었던 디켐베 무톰보Dikembe Mutombo를 포함하더라도 198cm에 불과했다. 특히 아이버슨은 겨우 183cm. 서부 팀의 220cm에 육박하는 센터들에 비해 무려 40cm나 작은 키였다.
키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평균 신장이 10cm 이상 차이나는 두 팀. 모두가 서부 팀이 동부 팀을 가볍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역시, 전반을 11점 차로 서부가 리드, 종료 9분 전에는 95-74, 21점 차까지 벌어졌다. 2점 슛 11개를 넣어야 역전이 가능한 상황, 3점슛도 8개를 넣어야 역전이 가능한 상황. 그조차 상대가 남은 9분 동안 단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기적은 이루어졌다. 마지막 9분이 남았을 때 까지도 21점 차로 지고 있던 그 순간부터, 아이버슨 혼자서만 무려 15점을 쏟아넣으며 서부 팀에 111-110, 1점 차 역전승을 이끈 것이다. 당연히 올스타전 MVP는 바로 이런 기적적인 승리를 이끈 아이버슨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는 MVP를 수상하고 난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Everybody was saying we couldn't win because of our size. But it's not about the size on paper, it's about the size of your heart."이를 조금 의역한 문장이, 바로 그 유명한 아이버슨의 명언이다.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2001년은 앨런 아이버슨에게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00-01시즌, 그는 평균 득점 31.1점을 기록하며, 마이클 조던 이후 최초로 평균 득점 30점을 넘기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또한 평균 스틸 1위, 최다 스틸 2위, 프리스로 2위, 프리스로 시도 4위, 출장시간 1위를 기록한다. 특히 프리스로와 관련된 그의 기록들은 그가 슈팅 찬스에서 얼마나 많은 파울을 당했는지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올스타전 MVP와 시즌 MVP 역시 아이버슨이었다.
아이버슨은 결국 자신의 팀을 NBA Final 까지 올려 놓는다. 상대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Lakers. 그리고 대망의 Final Game 1. 힘겹게 다른 팀들을 꺾으며 올라온 필라델피아에게, 리그 전체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LA Lakers를 상대로, 게다가 LA 홈 구장에서 치뤄졌던 이 경기는 보나마나 였다. 특히 LA Lakers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을 정도의 공격력과 수비력, 집중력, 조직력을 보여 주던 팀이었다. 멤버 구성 역시, 필라델피아의 그 누구도 샤킬 오닐을 막을 수는 없었고, 코비 브라이언트를 막을 선수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LA Lakers는 오직 아이버슨 한 사람을 막기 위한 전담 수비수 조차도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차분하고 조용하던 팬과 해설자들. 아이버슨이 골을 넣으면 넣을 수록 경악을 한다.
그는 이 경기를, 말 그대로 '지배했다.'
절대로 풀지 못할 것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이 가로막았을 때, 그는 항상 스스로 그 해답을 보여주었다. The Answer, 바로 앨런 아이버슨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이버슨은 이 경기에서 48득점, 6어시스트, 5리바운드, 5스틸로 혼자 팀 득점의 절반을 만들어내는 대활약을 펼치며 팀의 107-101로 승리를 이끈다. 특히 위 동영상의 5분 40초, 아이버슨이 슛을 성공시킨 후 넘어져 있는 그의 전담 수비수 데릭 로를 넘어가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덴버로 이적한 이후, 또다시 디트로이트, 멤피스를 거쳤고, 나이가 많아지면서 예전에 보여주던 그 폭발적인 플레이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엄청난 스코어러였지만, 팀의 입장에서는 기량이 떨어지고 있는 나이 많은 선수를 풀타임 주전으로 뛰게 하는 것보다, 성장하는 유망주에게 출전기회를 주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때문에 아이버슨은 그의 엄청난 존재감, 명성에도 불구하고 '교체멤버'로써 뛸 것을 강요받았고, 아이버슨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아이버슨은 은퇴를 선언했다.
마이클 조던도, 매직도, 버드도, 그 누구도 아닌 '앨런 아이버슨'으로 남겠다던 치기 넘치던 코트 위의 악동이, 이제 은퇴를 발표하는 그의 편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To Michael Jordan, Magic Johnson, Isiah Thomas, Charles Barkley and Larry Bird, you guys gave me the vision to play the game that will be forever in my heart.
Posted by ipur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