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후기, 여행기,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참 못적는다. 내 글이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재미있는 기행문을 읽어본 적도 사실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기념관을 다녀오고서도 지금까지 포스팅이 없었던 것도 이런 요인이 한 몫 했다. 그런데 이렇게 늦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글은 나오지 않는다. 윤동주 시인의 기념관은, 처음 찾는 보는 사람에게는 실망만 줄 만큼이나 작은 규모이다. 보통 집의 방 하나만 한 조그마한 크기에,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물이나 노트 조차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당시의 성적표 몇 개와 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기록들 조금이 전부다.

윤동주 선배님은 공부를 잘했다. 영어 빼고. 히히
하지만 이전에 이미 기념관을 찾았던 적이 있는 나에게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아무 의미없이 지나쳤던 글들이 눈에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티 없고 맑은 고독과 깊은 종교적인 사랑으로까지 경도했던 그의 인간성, 민족과 시대적 현실에서 불멸의 가치로써 탈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자유와 정의에 대한 불굴의 저항정신을 그는 아울러서 소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깊고 벅찬 정신을 그는 천직의 서정성과 기법적 자질로 잘 조화시키고 통어하여, 많지는 못하나마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적 성과를 거두었고, 훌륭한 인간적 성실을 구현하여 일제암흑기의 단절된 우리 문학사를 시와 지조와 피 흘리는 목숨의 희생으로써 이어 놓은 애절한 위업을 성취하였다. 시와 사상, 사상과 지조, 그리고 서정정신과 저항 정신이 한 줄기 순절에의 희생으로 일철화함으로써 하나의 영원한 비극적 아름다움을 이루어 놓았다."
- 박두진 시인(전 연세대 교수)
박두진 시인 역시 우리 나라의 시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연세대학교 교수를 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지만 말이다. 역시, 평소에 보던 글과는 문장력의 수준이 다르다. '많지는 못하나마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적 성과를 거두었고' 라는 찬사도 눈길을 끌지만, 그 내용을 떠나서 이 글 자체의 문장력에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언제쯤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1940. 12월
- 윤동주 스스로 가장 아꼈던 작품
사실 처음 본 시였다. 병원이라, 윤동주 시인이 스스로 가장 아꼈던 작품이라는 설명을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상당히 마음에 드는 시이다. 읽히는 느낌도, 자연스레 생기는 운율도 아름답다. 가장 아낀 작품이 될만 하다. 아마 그 당시의 젊은 윤동주가 느끼던 것들, 고민들, 생각들을 잘 내포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그렇겠지.
딴은 얼마의 단어를 모아 이 졸문을 지적거리는 데도 내 머리는 그렇게 명석한 것은 못 됩니다.
한 해 동안을 내 두뇌로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일일이 헤아려 겨우 몇 줄의 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봄바람의 고민에 짜들고, 녹음의 권태에 시들고, 가을하늘 감상에 울고, 노변의 사색에 졸다가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일년은 이루어집니다.
- 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
한 해 동안을 온 몸으로 일일이 헤어려 겨우 몇 줄의 글을 쓴다고 고백하고 있는 윤동주 시인.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진다.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일년은 이루어집니다.'
그저 감동스럽다.

별이 바람에 스친단다. 맙소사.. 그저 놀랍다. 아름답다.
글에는 인격이 묻어나온다.
생각해보면, 부러운 것은 비단 문장력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글 앞에서 부끄러웠던 것은 다른 이유였다.
Posted by ipu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