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랬던 나에게 있어서 위로가 되준 것이, 아빠는 왠만해서는 시험 성적으로 날 혼내지 않으신다는 점이었다. 오후에 집에 들어가면 엄마한테 한참 혼나기야 했지만, 저녁에 아빠가 오셔서는 그래도 그 이후로 별다른 꾸중이 없으셨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결과도 중요하다'라시던 엄마에 비해, 아빠는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그런거면 어쩔 수 없다.' 라고 항상 말씀하셨기에, 물론 시험공부 하겠다고 독서실 갔다가 하루종일 농구만 하고 밤늦게 들어와서는 '집까지 뛰어오느라 땀이 많이 났어요'라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잘치든 못치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시험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역시나 시험도 못쳤을 때는? 와우, 판타스틱.
'열심히 하는게 중요하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열심히 하는 과정보다는 엄마한테 안혼나는게 더 중요했던 어릴 적 나에게 일종의 변명같은 것이었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난 시험을 좀 못보더라도 이렇게 변명할 수가 있었으니까. '열심히는 했는데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 몇 살 더 나이를 먹어서 단순히 혼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수능을 잘 치고 싶었던 고등학교 때도 비슷하게, 모의고사를 망치고 들어온 날에도 혼나는 시간보다 왜 시험을 못친 것 같은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시간이 오히려 더 많았다. 특히 부모님은 항상 '얘가 학원을 안다녀서 더 잘할 수 있는데 수능공부 따라가는걸 힘들어하는게 아닐까'란 걱정을 많이 하셨고, 그럼에도 나는 죽어도 학원을 안가려고 했기에 항상 '학원에 안가도 정말 학원 다니는 애들보다 잘할 수 있겠느냐'는 류의 대화 때로는 싸움(!)가 주가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되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열심히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고 하는건 잘못된거다.' 이 문장을, 그래서 나는 좋아했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에는 저 말이 두렵다. 지금의 나에게 저 말은 이렇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되면, 그건 내 능력이 거기까지 인거니 그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죽어라 열심히 했지만, 넌 못했다. 너의 능력은 딱 그만큼이다.' 라고 들리는 것이다. 어릴 때는 열심히 안했어도 안혼나려고 열심히 했다고 그랬는데, 이제는 내가 죽어라 열심히 한 것도 열심히 안했다고 변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자체도 능력이란 걸 알면서도, 차라리 내가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내 한계가 거기까지임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런건 인정하기 싫으니까. 인정 할 수 없으니까. 아직은 정말 내 모든 걸 다 바쳤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이것 역시 참 반성할 일이긴 하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원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 난 그런 일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기 싫다.
하긴, 그런 일은 없을 게 분명하다.

Posted by ipur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