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저
문학동네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던 천상병 시인이 그렇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던 윤동주 시인이 그렇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던 김소월처럼 은은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던 김지하 시인처럼 터질듯이 외치기도 하지만 그 언어들 속에 담겨있는 것은 역시, 시선이다.

참 오랜만에 집어든 시집이었다.
안도현, 익숙한 이름이다. 예전에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로 나에게 처음 다가온 시인이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춘기였기 때문일까, 내가 서점으로 달려가 읽었던 안도현 시인의 시집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 삭막한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애의 그리움.

이 시집, '바닷가 우체국'에서도 여전히 안도현 시인은 낮은 곳에서 부터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편안하다. 부드러워졌다.

茅亭모정 아래

한 떼의 잠든 일꾼들
모두 臥佛와불 같다.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쌔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휴식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누워 계신 게야

낙숫물

빗방울하고 어울리고 싶어요
깨금발로 깨금발로 놀고 싶어요
세상의 어깨도 통통 두드려주고 싶어요

'너에게 묻는다'가 세상에 던지는 거친 질문이라면, '茅亭 아래'는 세상을 향해 짓는 미소다. 여전히 안도현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부대끼며, 지친 세상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하지만 내가 이 시집 '바닷가 우체국'에 담겨 있는 것은 그런 목소리들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담겨있다. 사랑이다.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 '꽃' 중에서

연락선

네가 떠난 뒤에 바다는 눈이 퉁퉁 부어올랐다
해변의 나리꽃도 덩달아 눈자위가 붉어졌다
너를 잊으려고 나는 너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사실 어딜 가든 흔한 것이 사랑에 대한 담론이다. 그래서 유치하기 쉽고, 이기적이기 쉽다. 하지만 그의 시에서 말하는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말라버리고 나면 그리움에서도 향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는 그의 독백은, 아직은 사랑을 말하기에는 어린 나에게도 아프게 스며든다. 사랑해봤다면, 그리고 이별해봤다면, 너를 잊으려고 나는 너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본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시리리라.



어쩌면 안도현 시인은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없이 반항적이고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던 사춘기에서,
이제는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볼 줄 아는, 조금은 자란 모습으로.

내 친구는 풀숲을 더듬거리며 오리
길에 왜 사람이 없냐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이라도 그려보라 하겠지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예끼, 짐짓 모른 체 농을 걸어오겠지

- '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중에서

여전히 안도현 시인은 말한다. 편안하게. 하지만 가볍지가 않다. 그렇다고 숨막힐듯 무거운 것도 아니다. 미소지을 수 있는, 동시에 아픈 곳을 다독일 수 있는 그런 말 들이다. 어느덧 벌써 쉰을 넘기신 아버지의 따스한 목소리처럼.



2008/12/24 13:40 2008/12/24 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