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인용:
태안주민들, 삼성重 검찰공소사실 부인에 '흥분'   

사상초유의 피해를 가져온 태안 기름유출 사고, 그 현장에 찾아온 수백만의 자원봉사자들. 하지만 사고의 책임자인 삼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삼성 뿐만 아니라 그 수많은 기업들 중 선뜻 지원금을 쾌척한 기업은 얼마나 되었던가. 오히려 '태안 돕기 이벤트'라는 식으로 국민들의 선의善意를 이용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회사를 마케팅 하려는 상술만이 판치지 않았던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 나라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기사 인용:
"가난한 사람들과는 같은 동(洞)이름 사용 못해" -강서구 가양 2동·3동 통합에 일부 주민들 '집값 떨어진다' 반발 

싸이월드에서 이 기사를 처음 보고, 마우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더니 베플베스트리플 1위가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마음은 이미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군요.'
그리고 그 밑에는 또다른 이런 리플이.
'고상한 척 하지마. 너희 동네랑 못사는 동네가 합쳐진다 그러면 너도 반대할거잖아.'




1347년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 시는 기근에 시달리면서도 영국군의 공격을 11개월이나 막아냈지만 결국 영국 왕 애드워즈 3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칼레 시민들은 시가지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거했다. 그러나 영국 왕 애드워즈 3세의 태도는 완강했다. 그 때 왕의 한 측근이 피정복지에 대한 자비를 구하자 왕은 마음을 바꾸었다.
"좋다. 칼레 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칼레 시민을 대표하는 여섯 명은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지고 교수형에 쓸 밧줄을 목에 매달고 맨발로 걸어서 나에게 나와야 한다."
그 때 망설이지 않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칼레 시에서 가장 부자인 생 피에르를 비롯한 시장과 그의 아들들과 귀족들이었다.장 데르, 장 드 피에네, 피에르 드 위상, 앙드레 당드리에, 자크 드 위상은 항복 표시로 영국 왕에게 바쳐야 할 칼레 시의 열쇠를 들고 맨발로 나섰다.
마지막 처형의 순간, 당시 임신 중이던 영국 왕비가 왕을 설득해 용감한 시민들은 목숨을 건졌다.

- 단 한 줄의  승리학, p69

로댕의 명작인 '칼레의 시민들'의 주제로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나는 대한민국이 슬프다.



2008/01/31 00:25 2008/01/31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