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에 들어서 서점을 찾거나 우연히 신간 소개를 보게 될 때, 아니면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게 되더라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나쁘다'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적이 있었을까?'
''착하다'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때도 또 있었을까?'
이를테면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혹은 '모르면 당하고 알면 인생이 쉬워지는 나쁜 심리술 100가지'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쁜'이라는 말이 기존의 가치체계에 반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곧잘 사용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이다. 여기서 '기존'이라는 말은 곧잘 '낡은' 혹은 '오래된' 이라는 말로 둔갑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 모든 어휘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치되는 위치에 서 있는 '나쁜' 이라는 말이 오히려 긍정의 뜻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는데, 바로 '나쁜'이라는 형용사가 '여자'라는 단어 앞에 붙을 때이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2004)
배드걸 가이드 - 나쁜 여자가 되어 원하는 것을 다 가져라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2000)
착한 여자 콤플렉스 벗어나기
나쁜 여자 cool 한 여자
나쁜여자로 사는 법 - 착한딸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대부분의 경우에 '나쁜 여자'라는 단어는 '기존의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인상'에 반대되는 의미로써, '자기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하며 능동적인 여인상'을 나타낸다. 다분히 마케팅 전략의 냄새도 풍기는 이런 작명 추세 덕분에 어느새 '착한 여자 < 나쁜 여자'가 되어버린 듯 하다.
하지만 '나쁜 여자'가 각광받을 수록, 더욱 '착한 여자'가 그리워진다.
'자기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하며 능동적인 여자'보다는 '지나치게 자신만을 내세우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며,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여자'가 그립다.
주위의 사람들 중에 자기 표현이 확실하고 당당한 사람은 넘치게 많지만,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베인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조금이라도 더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의 사회 풍토와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의견을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버릇없는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말을 아끼는 대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을 두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쁜 여자'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모습들을 오히려 자랑스러이 여기는 태도들과, 따라하려 허둥대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그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그것이 단지 몇몇 개인의 취향이나 판단이 아닌 우리 사회의 풍토라 느껴진다는 점이다. 지금의 사회는 분명, 들을 줄 아는 사람보다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각광받는 사회다.
Posted by ipur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