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링크'라는 책에 대한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던 바와 같이, 현재의 사회를 정치 경제 사회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커다란 네트워크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컴퓨터과학의 카테고리 안에서도 흥미로운 주제 혹은 키워드들이 이 복잡계 안에 속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소셜 네트워크 Social Network', '그래프 이론 Graph Theory' 등을 들 수 있다.
KAIST 의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을 때, '링크'와 함께 소개해주신 것이 바로 복잡계 컨퍼런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8월 말과 9월 초에 연락을 드렸었는데 11월 29일, 연세대에서 복잡계 관련 컨퍼런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 때 다이어리에 적어놓고는 참가신청을 하고, 그리고 바로 오늘 그 복잡계 컨퍼런스란 곳에 가게 된 것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전날 밤새도록 무언가를 만들다가 잠들어서 늦잠을 잔 것도 이유였지만, 사실 오전 세션에서는 도무지 관심있는 발표주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컨퍼런스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무얼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각 세션의 제목을 보고는 '논문 발표회 같은건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도착해서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쉬는 시간에 들은 바로는 젊은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주제라는데, 항상 대학교 학부에서만 생활하는데다 컨퍼런스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그렇게 느껴졌던 듯 하다. 단지, 연령층이 그렇다보니 대부분이 정장차림이고, 나처럼 여유롭게 편한 청바지에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고 온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뭐 어떠랴, 나는 아직 학생이고, 발표자도 아닌데다 예의에 어긋날 정도로 편한 옷을 입고 간 것도 아니니까.
두번째 세션부터가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 Track 1과 Track 2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왔다갔다 하며 내가 들은 발표의 제목들은 아래와 같다.
Track 1. 자유투고 연구
Session 2
- The Price of Anarchy in Transportation Networks
- KAIST 물리학과 윤혜진, 산타페 연구소 Michael T. Gastner,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
Track 2. 대학원생 공모
Session 2
Session 3
- Comparison of Online Social Relations in terms of Volume vs. Interaction: A Case Study of Cyworld
- KAIST 전산학과 곽해운, 전현우, KAIST 물리학과 엄영호, Center for Complex Network Research 안용열, KAIST 전산학과 문수복 교수,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 롱테일 현상은 항상 존재하는가? - 제품의 다양성 증가에 따른 탐색비용과 지각된 위험이 미치는 영향
- KAIST 경영대학 배윤수, 박봉원, 안재현 교수
- 시스템사고에 입각한 비정규직 보호법의 인과루프 분석
- 서울대 지역학과 오승우,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하미향, 허립- 유유상종과 상호작용: 사회적 영향 네트워크 진화의 동역학
- 서울대 사회학과 손윤규- Structure and evolution of online social relationships: Heterogeneity in unrestricted discussions
- KAIST 물리학과 엄영호, 고려대 물리학교 고강일 교수,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강병남 교수- Pajek 프로그램을 이용한 5, 6공 정부의 장관 임면(任免)에 관한 분석
- 서울대 경영학과 이해경, 연세대 행정학과 노성민, 연세대 기술경영학 김용원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장 먼저 들었던 Comparison of Online Social Relations in terms of Volume vs. Interaction: A Case Study of Cyworld 였다.
싸이월드를 통해서 인간관계의 특징을 살펴본 연구였는데, 얼마 전까지 읽었던 책 '링크'와 매치되는 부분이 많았던데다가 발표도 깔끔했고, 논리도 비약이나 확대해석 없이 얻어진 데이터를 충분히 분석하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KAIST 학생 답다, 라는게 느껴지는 발표였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에 논문 시상식에서 난 당연히 이 논문이 금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받지 못한것은 정말 의아했다.
궁금한 내용이 있어서, 발표가 끝나고 밖에 잠깐 나와 계시던 정하웅 교수님께 질문을 하기도 했다. 정말 궁금하던 것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젊으신데다가 너무 인상이 좋아서 무엇이든 좋으니 인사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게 '링크'를 추천해 주시고, 이 자리도 가르쳐주신 문수복 교수님도 찾았는데, 오후에는 보이지 않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든 세션의 발표가 끝나고는 토론 시간이 있었다. '링크'를 통해 이름을 알고 있던 정하웅 교수님도 토론에 참석하시고, 포프를 통해 역시 이름을 알게 된 김용학 교수님도 사회자로 계신데다가, 각 분야의 석학 분들이 모여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서 앞으로 가서 앉았다.
토론이 시작하고 패널 소개를 해주실 때야 알았지만, 앞에 나와계시던 분들은 실로 대단한 분들이었다. 문학의 허정아 교수님, 경제학의 최정규 교수님, 과학철학의 고인석 교수님, 정치학의 민병원 교수님, 교육학의 이상오 교수님, 그리고 물리학의 정하웅 교수님.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분이 정하웅 교수님 뿐이라 다른 분은 사실 모두 이름조차 처음 듣는 분들이었는데, 약력을 들어보니 우와- 싶은 분들이 모두 모여계셨다.
토론의 핵심 키워드는 '상상력'과 '수학'이었다. 어찌보면 양 극단에 있는 두 학문, 문학과 물리학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안타까운건, 정말 호화롭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그 사이를 잇는 연결점을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했다고 할까? 하지만 사회를 맡으신 김용학 교수님의 말처럼, 첫 술에 배부르랴,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토론을 보면서 느낀게 많았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차마 말하기 힘든 무언가를 담담하게, 정면으로 맞대하는 모습들이. 복잡계'학' 이라는 것은 사실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를 위한 어떤 방법론 혹은 페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 즉, 아직 체계적인 학문으로써의 틀을 가추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또렷이 전달하고 있는 교수님들이.
'복잡계 컨퍼런스'라는 자리에서, '복잡계'라는 큰 흐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유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예의상으로라도 미래가 밝다느니, 주목받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그럴 듯 하게 할 수도 있을텐데, 정확하게 문제점과 한계를 파악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무서웠다. 자신의 전공범위가 넘어서는 분야에 있는 다른 교수의 발언들에서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이. 그걸 모두에게 가벼운 웃음을 줄 수 있는 위트로 만들어 내는 능력까지 지닌 그 모습들은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위트로 만든다는 것은 이미 다른 교수의 발언 내용에 대해 자신이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자신감이 아닌가!
내가 석사과정을 하면서 공부하게 될 분야는 사실 복잡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잘 와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부전공을 정하면서 마지막까지 날 고민하게 했던, '소셜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을 연구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아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든데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졸업논문을 쓰는 수업에서 단체 회식을 할 때 교수님께서 하셨떤 말이 떠오른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나도 되겠다.
오늘 본 그 교수님들같은 사람이.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Posted by ipuris

